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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review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What to do when I'm gone)

 

 

 

 

 

 

 

 

겉표지를 벗겨내면 나오는 엄마가 사라진 빈 자리가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엄마가 누워있던 자리에는 엄마가 남긴 기록들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내게만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 날이 온다면 

이 책을 읽은 경험은 내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줄 것인가? 

 

 

 

처음 책을 집어 들어들고 읽기 시작했을 때

음식 만드는 법을 다룬 레시피가 너무 많아 보여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

왜 실망스러웠던 것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대신 그 음식을 내가 직접 만들 수 있다면 

분명 그 빈자리를 조금은 채워줄 수 있는 방편이 될 텐데.  

(사실은 얼마 후에 엄마한테 전화해서 엄마표 김치 만드는 법도 알아냈다.) 

 

그림도 정확히 내 취향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대충 그린 듯한 엉성한 그림선에 이토록 쨍쨍한 원색의 색감이라니. 

 

 

 

그럼에도 군데군데 읽을 때마다 눈물나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책이 있다는 것, 이런 책을 쓰게 만든 발상이 참 좋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 날을 진지하게 떠올릴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그 날을 대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으니까.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적어도  돌이킬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행동해야지.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아래에 기록해 둔다.

 

 

 

 

부모의 죽음은, 이제 다음 차례가 너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달하는 자연의 섭리 같은 거야.

마치 인생의 다이빙대에 올라, 바닥도 보이지 않는 아득한 물속으로 뛰어내리기를, 혹은 누가 뒤에서 밀어주기를 기다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실, 잘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닌데, 실제로 겪는 건 전혀 다른 얘기라서, 소중했던 사람을 잃으면 예상도 못한 큰 타격을 입게 되지.

오늘은 수영하러 가기엔 별로 좋은 날이 아닌 것 같구나. 대신, 나무가 많은 울창한 숲으로 가서 걸으렴. 그리고 그곳에 사는 너구리와 곰과 여우들을 생각해 봐. 그 동물들은 인생의 다이빙대 같은 것은 조금도 염려하지 않아. 너도 어느 정도 지나면 자연히 그렇게 될 거야.

결국은 우리 모두 죽고 끝날 텐데 왜 굳이 힘들게 살아가야 하느냐고? 거기엔 훌륭한 이유가 있어. 네가 영원히 산다고 가정해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해 버릴지 상상이나 가니? 다가오는 유효기한이 있기에 비로소 놀랍고 경이적인 일들이 생기는 거야.

 

 

 

 

 

 

 

 

 

 

비통에 빠져 있는 동안은, 네 마음이 제멋대로 과거의 기억 속 얼굴이나 장소, 시간을 정처 없이 배회하기도 하고, 갑자기 미래로 날아가 고아가 된 네 처량한 신세를 엿보기도 할 거야. 그러나 생각은 생각일 뿐이야. 생각은 현실이 아니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생각은 늘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못 돼.

풀밭으로 나가 가장 푸르게 보이는 곳을 찾으렴. 그 자리에 무릎을 대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 봐. 작은 벌레들, 형형색색 줄무늬들, 헝클어진 잎사귀들……, 현실은 네 눈에 보이는 이런 것들이야. 지그시 눈을 감고 흙냄새를 깊숙이 들이마셔 봐. 운이 따라준다면, 그 동안 스프링클러 장치가 돌아가는 일은 없겠지.   

 

 

 

 

 

 

 

 

 

지금까지는 내가 죽어서 이 세상에 없다 해도 하나도 힘들 게 없었단다. 그래서 웃긴 농담도 하고 실없는 소리도 늘어놓고 했지.

하지만 오늘은 아냐.

전화기를 들어 너에게 축하 전화를 하는 대신, 이렇게 누워 있어야 하다니.

골든 레트리버 사진이 있는 생일 카드에 용돈을 두둑이 끼워 주지 못하고, 이렇게 죽어 있어야 하다니.

솔직히 말해, 난 누구보다 이렇게 무덤에 누워 있어야 하는 내 자신이 가장 불쌍하단다. 직접 장식하겠다고 나섰다가 당장이라도 허물어 내릴 것 같이 된 케이크를 앞에 두고 호들갑을 떨지도 못하고, 너를 꼭 안아 줄 수도 없는 내 자신이 말이야. 그러니 정작 당사자인 네가 어떤 기분일지는 감히 상상밖에 못하겠구나.

오늘이 힘든 하루가 될 거라는 거 알아. 그렇지만 잊지 말아주렴. 여기서 진정한 피해자는 나라는 사실을. 앞으로 생일날에는 너 자신이 아니라, 나를 가엾게 여겨주렴.

아, 이건 정말 싫다. 네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몰래 엿보려는 의도는 아냐, 방해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 그저 잠시 들렀다 갈까 했을 뿐이야.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꿈이었는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같은 건 곧 잊어버릴지도 모르겠구나. 다만 재회의 순간에 느꼈던 느낌만은 되도록 오래 간직해 주렴. 설마 내가 방 청소하라는 등의 잔소리나 늘어놓은 건 아니겠지? 모쪼록 내가 찾아올 때마다, 내가 널 얼마나 늘 변함없이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