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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review

한 개인의 삶 (토지)

 

Virginia Lake, 올 겨울의 대설은 평년보다 꽤 늦은 1월 말에 왔다. 

'.... 내가 죽으믄 모두 고생만 하다 갔다 할 기고 특히 영광이 가심에 못이 박힐 기다. 그러나 나는 안 그리 생각한다. 그라고 후회도 없다. 이만하믄 괜찮기 살았다는 생각이고......"
     그것은 길상이 되풀이하여 생각해보는 구절이었다. 주어진 자기 삶에 밀착하여 혼신으로 끌어안고 치열하게 살다 간 송관수, 길상은 자기 삶이 얼마나 낭비적인 것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마치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지렛대를 받쳐가면서 그것은 정체 이외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활도 애정도 바로 그 정체 상태였다. 순환이 안 되었다. 약동도 없었다. 
    한 개인의 삶은 객관적인 것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불행이나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모호한가. 가령 땀 흘리고 일을 하다가 시장해진 사람이 우거짓국에 밥 한술 말아 먹는 순간 혀끝에 느껴지는 것은 바로 황홀한 행복감이다. 한편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는 사람은 혀끝에 느껴지는 황홀감을 체험할 수 없다. 결국 객관적 척도는 대부분 하잘것없는 우거짓국과 맛 좋은 고기반찬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지며 남에게 보여지는 것, 보일 수 있는 것이 대부분 객관의 기준이 된다. 사실 보여주고 보여지는 것은 엄격히 따져보면 삶의 낭비이며 별반 관계가 없다. 삶의 진실은 전시되고 정체하는 것이 아니며 가는 것이요 움직이는 것이며 그리하여 유형무형의 질량으로 충족되며 남는 것이다. 
                                                                                - 토지 16권 5부 제1편 혼백의 귀향 5장 관음탱화 

 

 

"그렇게 오랫동안 붓을 들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세월인 게야. 자네 부친의 세월 말일세. 식을 맑게 간직하고 닦아온 자네 부친의 세월. 사람들은 대부분 본래의 때묻지 않는 생명에 때를 묻혀가며 조금씩 망가뜨려가며 사는데 결국 낡아지는 것을 물리적은 것으로 인식하지. 생명은 과연 물리적인 것일까?" 
                                                   - 토지 16권 5부 제1편 혼백의 귀향 5장 관음탱화, 거의 마지막 부분 

 

 

 

 

 

토지 5부으로 접어들었다. 끝이 보인다. 

e북으로 읽고 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전에 비해 분량이 줄은 것 같다. 

4부에서는 저자가 등장인물의 말을 빌어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부분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5부에 접어들어서는 어깨에 힘이 많이 빠진 느낌이다. 읽기가 훨씬 편하다. 

 

 

 

결국 남에게 보여지는 것, 보일 수 있는 것이 대부분 객관의 기준이 된다. 사실 보여주고 보여지는 것은 엄격히 따져보면 삶의 낭비이며 별반 관계가 없다. 삶의 진실은 전시되고 정체하는 것이 아니며 가는 것이요 움직이는 것이며 그리하여 유형무형의 질량으로 충족되며 남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왠지 가슴속 어딘가가 쿡 찔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얼마만큼이나 '삶의 낭비'에 신경을 쏟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식을 맑게 간직하며 때묻지 않은 생명을 망가뜨리지 않고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