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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review

유년기의 끝_Childhood's End

 

이렇게 많은 여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1세기 전만 해도 엄청난 문제들을 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은 이런 문제들 대부분을 해결해 주었다. 잘 교육받은 사람들은 권태에 빠지지 않았다. 문화는 예전이라면 환상적이라고 여겨졌을 만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인류의 지능이 높아졌다는 증거는 없었지만, 처음으로 인류는 자신의 두뇌의 모든 기능을 완전히 사용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p. 162 
처음에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잰은 곧 정신을 차리고 여기서는 어떤 선입견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잰의 정신은 그의 감각이 뇌의 감추어진 방으로 전달하는 어떤 메시지도 놓쳐서는 안 되었다.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되었다. 오로지 관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이해는 나중에 오는 것이거나, 아니면 아예 오지 않는 것이었다. p. 290 
"이런 일은 약간의 이점을 가지고 있소. 게다가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어쩔 수 없는 일에 화를 내지 않지요." 잰은 찌푸린 얼굴로 생각했다. 인류는 그 명제를 한 번도 완전히 받아들인 적이 없지. 인류에게는 논리를 넘어선 것들이 있었으며, 오버로드들은 그것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p.302

 

1950년대에 쓰였다고 믿기지 않게 흥미로운 책이었다.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진 건 아쉬웠다.
뒤에 실린 작품 해설에서 내가 책을 읽고 느낀 부분을 나보다 더 잘 설명해 놓았기에  아래의 인용문으로 대신한다. 

 

<유년기의 끝>에서 이렇다 할 반격 한 번 못 해보고 어영부영 외계인의 지배를 받아들인 채 그 과실을 따먹는 데만 안주하는 인류의 미래상은 그리 유쾌한 모습이 아닙니다. 다행히 클라크가 불러들인이방인들은 무소불위의 권능을 가지고도 유례가 없을 만치 관대하고 자비로운 자들입니다. 그러나 철학자 왕이 못 이룬 꿈을 선진 외계 문명이 누워서 떡 먹기처럼 해낸다는 것이 과연 공감이 갈 설정일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진화 형태가 개체를 희생한 대가로 형성된 거대한 단일 유기체로서의 수렴이라니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발상입니까?
   이에 대한 실마리는 클라크의 시선이 인류가 아니라 오버로드들과 맞춰져 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철저한 관찰자이자 그렇게 얻은 자료를 토대로 비전을 얻어보려는 오버로드들의 노력이야 말로 클라크의 입장이 아니었을까요? 클라크의 진의는 골칫거리 인류를 파쇼적인 진화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담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SF 소설의 단골 요소인 엄청난 경이뿐이었을까요? p. 370 (작품 해설) 
이 글의 앞에서 언급했듯이, <유년기의 끝>은 양차 세계대전과 동서 냉전의 대립을 목격한 작가가 자기 종족의 미래를 염려한 나머지 써본, 우회적으로 표현한 경고 메시지가 아닐까요? '스스로 세상을 올바로 개척해 나갈 힘이 없으면 다른 누군가가 당신의 길을 열어줄지 모른다. 단, 그 경우에는 그 길이 얼마나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당신은 되돌아볼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류의 분쟁과 오류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클라크는 뭔가 더 나은, 인류와는 격이 다른 존재를 동경하게 된 것일까요? p. 371 (작품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