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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센 비용과 일본인의 사고

 

 

3년 6개월간 일본에 사는 동안은 여행을 참 많이도 했었다. 뼈속 깊이 한국인인 나라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 적대심이 없지는 않은지라 그곳에 살던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할 때만은 꽤나 즐거웠던 것 같다. 때론 여행하는 것도 피곤하다고 계획을 짜는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투덜거렸던 것은, 내가 복에 겨워 정신을 못 차렸던 걸로... 

 

그런데 끝까지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한 가지 문화(?)가 있다. 나는 신칸센이 너무 비싸 늘 할인 항공권을 뒤져 국내여행을 다니는데, 외국인들은 JR패스다 뭐다 하고 너무도 싸고 편하게 신칸센 여행을 하는 거다. 예를 들어, 도쿄에서 홋가이도를 간다 치면 1인 편도가 30만원 정도이니 단순 왕복만 60만원이 든다. 홋가이도  안에서의 교통비도 무시할 수 없다. 홋가이도가 만만한 규모의 섬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코다테에서 삿포로까지 가는 데에만  자유석 편도가 10만원 정도였다. 그걸 모두 합하면 교통비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그럴 거면 아예 현지 물가가 싼 해외 여행을 가지 싶은 것이다. 그런데 반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30만원 정도에  JR Pass를 사서 7일 동안 무제한 일본 전역을 여행할 수 있다 . 홋가이도 한 번만 갔다 온다 해도 현지인의 절반 가격이다. 중간에 다른 기착지를 거칠 때마다 그 효용성은 크게 늘어난다. 

 

 

 

 

큰 맘먹고 편도만 신칸센을 타고 홋가이도로 가는 차내에서. 올 때는 치토세 공항에서 비행기로... 

 

 

그뿐만이 아니다. 국내선 항공 요금 또한 같은 맥락이다. 저가항공사는 그 편차가 크지 않지만, ANA나 JAL을 이용할 경우 해외에서 예매를 하면 내국인 요금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티켓을 살 수 있었다. 언젠가는 하다못해 한국을 방문한 동안 일본 국내선 비행기표를 사들고 온 적도 있었으니까. 

 

허나 정작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는, 위와 같은 가격 체계의 부조리함(?)이 아니었다. 나야 어차피 일본을 뜨게 될 사람이었고, 일본에는 워낙 이해 안 되는 것들이 많으니 그냥 그중 한 가지려니 하고 넘기면 되었다. 나중에 혹시라도 다시 여행을 오면 그때는 입장이 바뀌어 외국인으로서 좋은 체계를 이용할 수 있게 될 터이니 좋게 생각하면 되는 거였다. 

 

 

 

 

교통요금 절약하겠다고 하루에 서너대 밖에 안 다니는 완행 열차를 시간 맞추어 탄 후 기념 촬영! 

 

내가 느낀 답답함은... 일본인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비롯되었다. 내가 그 주제를 꺼낸 건, 당시 나도 거주자로서 같은 불리함을 적용받고 있었으므로 같은 처지로 함께 울분을 토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사회 기반 시설을 유지하고 사용하기 위해 매년 매달 비싼 세금을 내고 있는 현지인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싼 가격으로 국내여행을 다녀야 하는데, 왜 외국인은 그런 엄청난 혜택을 받으며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중간에 들리고 싶은 곳이 있다면 부담없이 내려서 잠시 뜨끈한 온센에 몸을 담고 오고 싶단 말이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KTX 요금이 외국인에게만 절반 가까이 싸게 제공되었다면,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과연 기꺼이 받아들이려 했을까? 

 

일본 친구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게 뭐 어째서?, 하는 맑은 표정으로 억울해 하는 내 시선을 빤히 마주볼 뿐이었다. 말을 꺼낸 내가 무안할 지경이었다. 대다수 일본인들의, 자국의 체계와 법규를 있는 그대로 순순히 받아들이고 수긍하는 성정을 내가 몰랐던 것도 아니다.  그래도 자신의 이익과 직접 결부되는 일이라면, 그래서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손해를 봐야  한다면, 뭔가 잘못되었다고 의심할 거라고, 불평이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틀렸다. 그 친구는 너무도 당연하게 그 부조리함(?)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친구가 평소 돈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런 것도 아니었다.  늘 근검절약하며 절대 허투로 돈을 쓰지 않는 친구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날 때마다 10엔 동전 하나까지도 깨끗이 나누어 더치를 주장하던 친구였다. 음식물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않으려고 알뜰히 계획을 세워 식단을 짜는 친구였다. 사리분별이 확실하고 똑똑하고 그늘이 없어 내가 매우 좋아하고 아끼던 친구였다.

 

나는 나름의 논리를 펼치며 친구를 내 말에 호응하게 만들려고 설득을 시도했지만 이내 큰 벽을 느끼고 단념했다.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주제라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윗분들이 알아서 잘 만들어놓은 제도이니 다 그럴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라고 생각하는 보통 일부 일본인들의 사고가 여기서도 작용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의 대화는 다른 주제로 옮겨갔고 내 머리속에는 일본 정치인들은 정치하기 참 쉬울 것 같다는  감상만 남았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 봐도 참 신기하다.  내 친구는 정말이지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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