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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게 목을 물린 신년의 추억

 

 

 

 

 

작년 1월 1일 자정이 갓 넘은 시각, 나는 지인의 집에서 열린 신년맞이 파티에 참석해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불꽃놀이부터 시작된 파티였기에 12시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대부분의 가족 단위 손님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9시 넘어 늦게 참석한 만큼 얼마간 더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집 부부는 불테리어 종의 개를 오래 전부터 키우고 있었다. 하얀 색에 눈이 작고 뭉뚝한 코를 가진 못생기기로 유명한 종이었다.  가끔은 그 못생김이 귀엽게 보이는 때도 있다고 하지만, 원래 나는 큰 개를 무서워하기에 그 개와 여러번 만나면서도 딱히 살갑게 지내지 못했다. 다만, 잘못 보였다가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떨까 무서워 나도 딴에는 눈치를 보며 내 곁에 와서 얼쩡거릴 때는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면서 잘 지내려고는 했다. 

 

2020년 새해가 막 시작된 그 시각, 마지막까지 남은 어른들 여섯 명이 거실에 앉아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동안 이 불테리어는 그 사이를 어슬렁거리고 다녔다.  맡겨둔 관심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듯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들러 얼쩡거리면서. 불테리어는 내 앞에 와서도 머리를 디밀었다. 모른척하고 앉아있으면 실례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레 불테리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기를 잠시, 

 

 

 

 

 

그 다음 얼마 간의 기억이 나에게는 남아있지 않다. 별안간 그 개가 벌쩍 뛰어올라 내 목의 오른쪽을 깨물었기 때문이다. 기억이 나지 않으니, 나로선 그야 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집주인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 목의 물린 부위를 소독해 주고 있었다.

 

파티는 그렇게 난장판이 되어 끝이 났고 나는 정신없는 상태로 집에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소식이 퍼지면서, 많은 이들의 위로와 격려를 받았는데, 이게 참 이상했다.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대부분 그 불테리어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사람을 문 개는 다시는 사람 곁에 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정작 나는 아무 의견도 낼 수가 없었다. 그 불테리어는 주인에게 무척이나 사랑받는 반려견이었는데, 괜히 내가 그 개에게 물려서 주인에게 힘든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앞섰기 때문이다. 분명히 피해자는 나인데 오히려 가해자가 된 것같은 마음이었다. 

 

이 즈음 나는 불테리어의 습성에 관해 많이 알아보았다. 왜 하필이면 '나'를 물었는지가 너무도 궁금해서였다. 나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그 자리에서 내가 가장 만만해 보였다는 것이다. 다른 어른들에 비해서 내 체구가 상당히 작았으므로 우스워보였던 것이 아닐까. 알고 보니 새끼일 적에도 주인의 손을 물은 전적이 있다고 했다. 

 

 

 

 

동물에게 물리면 반드시 파상풍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하필 1월 1일인 그 날은 패밀리 닥터에게 연락할 수가 없었고, 주위에 있는 워크인 클리닉을 알아보며 어여부영하다 보니 어느새 1월 2일이 되었다. 시내에 한 군데 있는 워크인 클리닉을 부지런히 찾아가니 역시나 감기 환자로 만원이었다. 접수 번호를 받아야 하는데 일찌감치 동이 나 버린 상태. 결국 저녁 오픈을 기다려 한 시간 일찍 가서 접수 번호를 받고, 또 한시간 반을 기다려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굳이 좋았던 점을 꼽자면  일단 진료실에 들어간 후로는 모든 절차가 신속하게 끝났다는 점이다. 넘쳐드는 환자로 지쳐 보이는 의사는 로보트 같은 얼굴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곧바로 파상풍 주사를 가져다 너무도 능숙하게 내 팔에 꽂았다. 언제 주사 바늘이 들어왔다 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고 훌륭한 솜씨였다. 항생제 처방도 간단히 끝났다. 처방전만 받고 나가면서 진료비 수납 과정도 없었다. 

 

 

 

 

며칠 뒤 패밀리 닥터를 찾아갔을 때와 어찌나 다른 경험이었는지 모른다. 우리 패밀리 닥터는 정말 큰일날 뻔했다면서 호들갑을 떨며 경과 확인을 위해 꼭 다시 와야 한다고 진찰 예약까지 미리 잡았던 반면, 워크인 클리닉 의사는 전혀 아무일도 아닌 일을 다루는 듯 무심했다. 지나고 보면 그 무심함이 한편 도움이 된 것도 같다. 별일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했으니까. 

 

아래는 하루하루가 지나며 목에 상처가 나아가는 과정을 사진으로 남긴 것이다.  혐오 사진일 수도 있으니 내키지 않는 분들은 그냥 넘어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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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일주일 간

 

 

 

 

2주째에서 4주째 

 

 

 

 

 

 

지금은 작년의 추억이 되어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지만, 한 동안은 그 트라우마가 꽤 심했다. 덩치큰 개는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였으니까 말이다.  다행히 지금은 상처도 잘 아물어  잘 살펴보지 않으면 못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반전은 따로 있다. 이 사건 이후로 불테리어의 주인인 남편 친구와 우리 부부의 사이가 완전히 벌어졌다는 것.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간은 과할 정도로 미안해하고 경과를 물어봐주고 하더니, 갑자기 연락을 뚝 끊어버렸다. 아직도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속으로 추측만 할뿐이다. 어떤 추측으로도 상처도 입고 친구도 잃은 그 이유를 충분히 답해 주지는 못하지만. 

 

 

 

지난 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길고 지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