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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책 한 구절

본문과는 하등 상관없는, 카라바죠의 그림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by Caravaggio, 1610. (Photo: Public domain by  Wikipedia )

                                                        

그래도 홍이는 그 밖에도 볼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 열흘 남짓 지나면 추석이다. 추석은 평사리에 있는 아비 곁에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만은 확실하다. 부산을 떠나 온 목적도 그것 때문이다. 그러나 평사리로 직행하지 않고 진주로 돌아온 이유는 막연하다. 아마 장이를 만나고 싶어 그랬겠지. 그렇다면 저만큼 보이는 장이 집으로 왜 달려가지 않고 민적거리는 걸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홍이는 죄의식 때문에 진주로 왔다.  장이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순수하게 느낄 수 있는 죄의식이지만 다른 또 하나의 죄의식, 밟아 뭉개고 싶지만 훨씬 더 쓰라리고 괴로운 감정, 때문에 진주로 왔다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것은 어미에 대한 것이다. 설령 어미가 바위 같은 강자요 자신은 모래알 같은 약자일지라도 자신이 거부하는 쪽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상대로부터 어떤 고통을 받든 피해를 받는 가해자는 거부하는 쪽이다. 깊은 관계일수록 특히 혈육관계일수록 거부에는 죄의식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한 가해의식은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있을 적에는 임이네의 사람됨을 생각하기보다 그의 이력, 그의 주변사정을 더 많이 생각했고 비참하다는 느낌, 연민의 정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개천을 끼고 한켠에는 임이네가 잠들었을 집이 있다. 다른 한켠에는 장이네 집이 있는 것이다. 다리 위를 왔다갔다하면서 홍이는 임이네와 장이가 동일한 여자라는 착각을 한다. 동일한 여자...... 하늘에는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 날카롭고 기분 나쁜 초승달이다. 희미한 하늘에 웅크리고 있는 것만 같은 비봉산의 과히 높지 않은 봉우리가, 하마 일어서서 밤을 헤치며 다가올 것만 같다. 뭔지 모르지만 웅크리며 지켜보는, 하마 일어서서 밤을 헤치고 다가올 것만 같은 괴물에게 사로잡힌 듯한 자기 자신의 운명을 문득 예감한 홍이 등골에 차가운 것이 타고 내려간다. 

   '저놈의 초승달!'
  비수를 휘두르며 최참판댁 안방으로 뛰어드는 광경이 떠오른다. 비수를 들고 -- 전율을 느낀다. 땀이 배나는 것을 깨닫는다. 부산서도 피뜩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맥락도 없이 그 생각이 왜 또 떠오르는지 알 수 없다. 자신에게는 원수도 상전도 아닌 아름다운 최서희의 모습이 눈앞을 지나간다. 임이네와 장이와 최서희와, 그것도 동일한 여자 같은 생각이 든다. 
   "왜 나는 여자를 이렇게 미워할까? 
                                                                                                    토지, 3부 2권, 12장 강물에 띄워 보내고 中 

 

 

가을이 한가득 무르익었다. 당장이라도 겨울이 찾아올 것처럼 삐쭉삐쭉 그 찬 손을 내민다.
올해 가을은 유난히 더 아리다. 지난 여름의 추억도 보잘 것 없고 다가올 봄의 희망도 안개 속처럼 뿌엿하다.
읽기가 쉽거나 편하진 않지만, <토지>는 나를 집과 이어있게 한다.
그 토양에 내린 내 뿌리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여정은 너무도 길다. 
한참째 다른 책은 하나도 보지 못하고 있다. 
겨울이 가기 전에 마무리지을 수 있을까.